교성초등학교33회
카테고리
작성일
2012. 8. 12. 11:56
작성자
|정창훈|

언제적 사진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가 학교 다닐 시절 보다 더 오래된 교실의 모습같아 보입니다. 아니면 국민학교 1학년 시절인지도 모를 일이고요. 건물 중간의 일제시대 양식의 교실은 제 생각에는 과학실과 도서실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나구 나머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러나 이 교실에서 공부한 것은 생각이 나고, 교무실쪽에서 선생님께서 한손에는 출석부와 한손에는 지휘봉(매)를 들고 한분씩 걸어 이 건물 복도를 지나칠라면 뒤어놀던 아이들이 쏜살같이 교실로 우왕좌왕하면서 들어가곤 했습니다. 한번은 건물 외벽에 나 있는 환기구멍으로 들어가 교실 바닥에서 떨어진 몽당연필을 거내오던 기억도 납니다. 옷에는 온갖 먼지를 다 뒤집어 쓰고 나오지요.

 

교무실 정면의 "멸공통일" 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군요. 으례히 운동회때이면 '때려잡자 김일성 무찌르자 공산당' 하던 것도 이때이며, 오래전에는 학교 정문 우측에 방위 초소가 있어서 몇명이나 되는 동네 방위병들이 담벼락에 쭈구리고 앉아 반합에 뭘 끊여 먹다가, 심심하면 가끔 울리던  사이렌 소리에 놀라 집게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꾹 누르고 실웃음으로 바라보았으며,운동장에서 열대여섯명쯤의 아이들이 떼로 노는데 해가 질 오후  5시만 무렵이면 한참이나 오징어하면서 뛰어 놀다가도 애국가 소리에 제자리에 서서 국기 계양대를 바라보며 가슴에 손을 얹던 시절입니다.

 

그래도 나름 규모가 있어서 아랫운동장, 윗운동장이 한걸음 턱을 두고 있었는데 사진에서도 그 모습이 조금 보이네요. 아직도 여자 아이들이 하얀 레이스치마에 발바닥이 넙쩍한 고무신으로 밟던 고무줄 놀이가 지금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진이 겨울에 찍은 것처럼 보이는데 이맘때면 후줄그레한 웃옷 소매자락에 줄줄 흐르던 콧물을 닦아 번질번질 하고, 콧가에 훔친 소매자락에서 딱이지 않은 코가 코밑에서 볼따귀쪽으로 말라 허옇게 나있어도 추운줄도 모르고 나다녔습니다.

 

생각 나시나요. 학교에 언제 전기가 들어온지를...

 

아마도 국민학교 2학년쯤인가 새마을 운동하면서 동네 어른들이 영차영차 힘껏 부르며 전봇대를 날던 모습이 아련합니다. 교실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면 탱자나무 사이로 수년전 상갓집 상여를 메고나서 수고쪼로 받은 낡은 수건을 목에 두른 어른들이 손바닥에 침을 발라가며 연신 '밀어라 당겨라' 하면서, 지금 들어도 정감있는 구수한 욕 몇마디를 던지며 일하셨습니다.

 

 "어이구 시부럴꺼 이눔의 전봇대는 왜이리 무건겨. 저기 오암서 솟재고개 가는 길에는 나무 전봇대루 헌다는디! 니미 오늘 우리는 공구리전봇대 꼽구 않았는겨. 오늘 아주 좃뺑이 치는구먼"

 

"어이! 영찬이 거기 지랄들 고만떨구 자네 이리 좀 와서 여기 몇삽 좀 더 찔러느봐. 전봇대 밑둥이 지대루 스지를 않찮혀!"

 

"아니 왜 나만 갖구그려." 영찬애비가 탱자나무 그늘에서 새마을 담배를 방금 몇모금 빨아대는 진복아비를 힐눈으로 쳐다보며 머리를 두어번 저어 니가 가보라는 시늉을 한다.

 

"여어! 진벡아비(진복아비) 니가 좀 가봐. 넌 여지것 엉덩이 좀 부쳣잖여"

 

"뭐시여 이자슥는 뭔일이 있으면 꼭 나만 시키드라. 아침에 쥐약 먹구 물을 안마셨나 별 헷소리를 나불대는겨. 저냥반 열불나기전에 얼른 삽들고 건너가 봐"

 

영찬애비는 못마땅하다는듯이 '캐액'하며 숨껏 들여마신 침이며 코를 진복아비 쪽으로 퉤하고 뱉으며 "오늘은 일찐이 왜이리 사나운겨. 저녁에 곽씨네 당집에 들러 굿이라도 해얄랑가. 어이! 참말루 못살겠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일이었건만... 전봇대를 사람이 힘으로^^

 

"아 - 아! 이장입니다" 하면서 시작되는 신작로 닥는다고 한가구당 한명씩 내보내라던 미라네 집에서 하던 방송이며...

 

이건 또 어디서 난건지!

2절에 나오는 봉대산이 어디인가요? 인구네 살던 지장골 태봉산쪽 아닌가요? 당췌 어딘지를 모르겠네.

 

한번은 교무실 뒷쪽에 있는 학교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마시고 있는데 당시 학교 소사로 일하시던 아버지가 학교숙소 한켠에서 낡은 등사기로 뭔가를 열심히 미시는 것을 보았는데 그게 이런거였던것 같습니다. 손에 검은 잉크가 손톱사이까지 끼어들고 팔에 긴 토시가 까매지도록 한번 밀고 한장 등사하곤 했습니다.

 

지금야 애들도 스마트폰이다 MP3이다 해서 최신유행가를 꿰차고 듣고 있지만 변변치 않았더 그 시절에는 대중가요 한두곡을 앞뒤 가사 다 자르고 몇 소절 부를 수 있는 것과 동요와 교가가 부를 수 있는 노래 전부였습니다.

 

당시에는 학교 전교생이 좀 되었던 것으로 생각납니다. 폐교 당시 몇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나름 어린 까까머리 대굴빡이 부디끼며 학교에 다녔는데... 1분단, 2분단은 여학생이고 3분단 4분단은 남학생이 두명씩 앉는 책상에 가운데에 금을 긋고는 넘어오면 죽여버린다느니, 내땅이니 니땅이니하며 다투던 학교였습니다.

 

언제한번 애들에게 부탁하여 교가를 피아노로 연주해서 녹음 파일을 올여 보겠습니다. 핸드폰 벨소리로 사용하면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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